야근 때 가끔 전화를 받는다. 이름 없는 독자들의 제보다.  물론 제법 그럴 듯한 제보도 있다. 예컨대 핵심 이슈(최근엔 현대차 사건 등)에 대한 정보를 흘려주는 전화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개의 제보는 술 취한 '아저씨'의 넋두리일 때가 많다. 자정을 넘기면 상당수 전화가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난다.  나는 적당한 욕지기는 들어주는 편이다. 오죽 욕할 대상이 없으면 신문사로 전화를 다 할까 싶어서다.

이 나라의 장삼이사에겐 아직도 신문사가 대단한 힘을 가진 조직인 모양이다.  자신의 문제를 대변하고, 해결해 줄 곳 쯤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못 받은 빚 받아달라"는 읍소부터 "자살하겠다"는 협박까지 온갖 전화가 이어진다. 심지어 "러시아 인구가 미국보다 많은지"를 묻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그들에게 신문사는 시대의 파수꾼이자, 지식 공장인 셈이다. 적어도 못 가지고 덜 배운 어떤 이들에겐 여전히 그렇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수화기 저편의 목소리엔 울음이 섞여 있었다. 특유의 쇳소리가 인상적인 40대 남성이었다. 한참을 흐느끼던 남자는 "기획 기사를  써달라"는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고, 울음에 젖어 눅눅했다.  기사의 제목은 '엄마 아빠의 눈물'이라고 했다. 그는 "가진 게 없어 자식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엄마 아빠들의 이야기를 다뤄줄 수 없느냐"고 거듭 물었다.

오늘 그의 울음엔 까닭이 있었다. 그는 딸 아이를 저녁 내내 다그쳤다고 했다. 학원비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학원을 보내달라고 떼쓰는 아이에게 모질게 대했단다. "우리집엔 돈이 없다. 그러니 앞으로 그런 사치스런 욕심 부리지 마라" 그 말을 하는 아비의 심정은 어땠을까. 가늘게 잦아드는 그의 울음 소리는 내 가슴에 꽂혀 쿵쾅댔다.  "지금 잠자는 딸의 얼굴을 보고 있습니다. 더 울지 말아야겠습니다.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울먹이던 그는 이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신문사가, 내 호구책인 기자질이, 아직도 어떤 이들에겐 막연한 희망이 될 수 있겠구나. 가진 게 없어 딸 아이를 윽박지를 수밖에 없었던 40대 가장은 '엄마 아빠의 눈물'이라는 기사를 통해 딸의 학원비 염려라도 덜 수 있을까 생각 했으리라. 이보다 진실한 제보가 있을까. 가진 것 없는 처지를 비관하다 술에 취해 신문사에 전화를 돌리는 가장들, 자녀의 학원비가 없어 울먹이는 부부들, 그렇게 몸도 마음도 가난한 이들. 이 곳에서 밥벌이를 하는 동안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기사를 단 한번이라도 쓸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것이 결코 이 세상을 뒤집어놓을 순 없겠지만 말이다.

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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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취재수첩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녀석이 떠났다. 뜻밖의 메시지였다.  거짓일 테지. 녀석이 떠났다구. 청천벽력의 소리였다. 메시지는 건조했고, 건조해서 곧 부스러질 듯했다. 아니, 그렇게 부서져 사라졌으면 했다. 그러면 그것은 거짓이 될 터였다. 녀석이 떠났다. 메시지는 부지런히 말하고 있었다. 내 곁을, 당신 곁을, 우리 곁을 그가 떠나갔다. 그의 나이 고작 서른이었다.

시간은 세상 사람들을 부단히 갈아치운다. 세상은 살아있는 자만의 것이다. 학교에도, 교회에도, 백화점에도 오직 산 자만이 다닌다. 시간이 그 권한을 결정한다. 시간이 허락한 자라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그 일이 터진 것도 그랬다. 말하자면 시간이 더이상 녀석의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녀석이 아니다. 시간이 녀석을 갈아치운 것이다. 그 운명의 틈에서 녀식은 사라진 것 뿐이다. 그게 전부다.  

그 일이 터지던 날, 얄궂게도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린 장례식장은 번들거렸다. 사람들은 색(色)과 생(生)을 동일시한다. 색이 바랜 사진이라야 망자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숨을 멈춘 녀석의 사진에서 사람들은 색을 빼앗았다. 녀석의 죽음은 이제 현실의 것으로 인증됐다. 흑백 사진 속 녀석의 머리칼은 살아있는 듯 춤추고 있었다. 녀석의 얼굴은 웃음빛이었다. 원체 해맑은 녀석이었다. 녀석이 웃을 땐 유리알 튕기는 소리가 났다. 죽음은 그 소리마저 빼앗았다.

빛바랜 사진 앞에서 생각했다. 회피할 수 없었으므로 녀석은 떠났으리라. 떠남의 순간에도 그의 유리알 웃음은 들렸으리라. 노래를 잘했던 녀석은 '선하신 목자~'로 시작되는 가스펠을 좋아했다. 노래는 이곳의 삶을 견디게 해주는 장치였다. 더이상 노래할 수 없었으므로 녀석은 떠난 것일까. 그곳에서 녀석은 그의 '선하신 목자'를 만났을까. 그 일이 터진 후 나는 먼 지방으로 돌아갔다. 먼지의 방에선 녀석의 유리알 웃음소리가 들렸다.

06.04.02.
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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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서른 살이 되던 날, 최승자의 시 한 토막을 꺼내 읽었다. 시인의 목소리는 명료해서 섬뜩했다. 시인은 서른을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나이라고 썼다. 새롭게 시작하려니 이미 멀리 왔고, 그대로 주저 앉기엔 한참 남아있어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서른 살의 나는 그 대책없는 모순이 아찔해 온 종일 웅크리고 있었다. 서른 살이 되던 날, 그 첫 날의 일이었다.


서른이 ‘이렇게 살 수도 없는’ 나이라면, 마땅히 지금껏 살아온 바를 따져봐야 할 터다. 꼬박 서른 해의 삶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이 말은 진실이 된다. 내 지난 서른 해도 대체로 수치스러웠다고 말하는 편이 정직하다. 서른을 이끈 것의 대부분은 지독한 나르시시즘이거나 그것을 지탱해준 외적 성과였기 때문이다. 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자기애를 실현할 요량으로 공부를 했고, 대학에 들어왔다. 이후 역시 꿈틀대는 나르시시즘을 감당할 수 없어 책을 읽었고, 글을 썼다. 대학생활 내내 알지도 못하는 개념들을 뒤섞은 말을 지껄이고, 글을 써댄 것도 그래서였다. 지적 허영에 휘감긴 꼴 사나운 나르시스트. 그것이 내 지난 세월의 한 단면이다.


그리고 서른 즈음 나는 기자가 됐다. 글을 쓰고 싶어 기자를 하겠노라 말했지만, 그 말은 사실 정직하지 못한 것이었다. 실상은 내 젊은 날을 지탱해온 지적 허영의 한 지점에 기자가 위치했던 것이다. 단순히 지식인 흉내를 내며 먹고 사는 문제도 함께 해결하고 싶었던 거다. 게다가 세상은 얼치기 기자를 지식인이라 불러줄 준비가 돼있었다. 내 기자 생활이 괴로웠다면, 그것은 오로지 내가 지식인 시늉만 했던 탓이다. 세상의 미추를 분별하고 함께 살을 부비는 교양인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서른은 꿈을 파괴하고 삶에 굴복해온 세월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예서 꿈이란 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뜻하고, 삶이란 화폐가 없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를 말한다. 비로소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가 된 나는 자본주의적 삶이 한 인간의 개별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체험하고 있다. 꿈을 서둘러 버리지 않으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숨 막히는 세상이다. 그러면 대체 어쩔 셈인가? 이렇게 죽어야 하나?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서른은 이를 단호하게 부정한다. 역설적이게도 서른은 자기 반성을 통해 또다른 삶의 차원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의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죽기엔 남은 세월이 제법 길기 때문이다. 꿈이 파괴된 현실에 치를 떨고, 서둘러 새로운 꿈을 세울 수 있다면 서른을 제외한 나머지 삶을 개별성을 지닌 자유인이자 교양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정신과 지식이 오히려 내 물적 기반을 지배하는 것이 그 꿈의 핵심임은 물론이다.


예수는 나이 서른에 ‘전복’의 꿈을 품고 세상 한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또 다른 삶의 차원을 발견한 것이다.  오늘 서른이 된 나는 내 또다른 서른이 이천년 전 청년 예수를 닮기를 꿈꾼다. 교양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낼 수 있다면 대책없이 소박한 그 꿈도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서른 살을 그렇게 살아왔지만, 이렇게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서른, 꿈은 다시 시작됐다.             


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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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기든스 저 | 을유문화사 | 원제 WHERE NOW FOR NEW LABOUR | 2004년 02월

기든스의 '노동의 미래'를 읽는 일은 불편하다. 옮긴이(신광영)는 이 책에 담긴 기든스의 정책적 상상력에 찬사를 보낸다. 정책적 상상력이야말로 기든스가 부드디외, 하버마스 들과 갈라지는 부분이라 말한다. 역자 서문에 그렇게 써있다. 그러나 그 말은 과장됐다. 책에서 기든스가 신노동당에 내놓는 정책들은 하나 같이 그른 것이 없다. 적어도 영국적 상황에선 그렇다. 하지만 그 정책들이 기든스표 '제3의 길'과 맞닿는 지점을 찾기란 어렵다. 그래서 읽기에 불편하고, 불편해서 괴롭다. 책읽기를 마치도록 제3의 길이 또렷이 그려지지 않는 탓이다.

좌도 우도 아닌 세계. 그곳이 기든스가 말하는 '제3의 길'이 통하는 곳이다. 정확지는 않지만 대강 이해하기론 그렇다. 그곳에선 이념이 물러나고 실용이 지배한다. 그래서 '주의(主義)' 대신 '정책'이 전면에 나선다. 그렇다면 의문 하나. 기든스는 무슨 까닭에서 영국 노동당을 사민주의 전통을 잇는 당이라 주장하는 걸까. 그가 이 물음에 답하기란 쉽지 않을 테다. 기든스는 “클린턴식 미국 민주당이 영국 신노동당의 모델이었다”(p.28)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수 정당이 사민주의 정당의 모델은 아닐 것이다. 결국, 기든스에게 사민주의 어쩌고 하는 것은 죄다 레테르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닳아빠진, 그러나 버릴 수 없는 포장지!

스스로를 '진보'라 '믿는' 이들에겐 흔히 보이는 오류가 있다. 스스로가 '선'이고 싶은 강렬한 자기애. 그에서 파생되는 편집증적 세계 인식. 기든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복지 축소,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 감세 정책 등 신노동당의 정책적 좌표를 설정한 그다. 신노동당(New labor)은 이미 노동당이 아니다. 그래서 '네오(neo)' 대신 '뉴(new)'란 말이 붙었다. 보수 정당과 다른 지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기든스는, 그의 신노동당은 스스로 좌파 혈통에 잇닿아 있음을 주장한다. '제3의 길'이란 정체 불명의 개념을 통해서다.

진보와 보수가 선악의 잣대가 아닐질대,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포장할 필요가 있을까. '제3의 길'이란 어정쩡한 말 대신 스스로의 보수적 정체성을 까발리는 편이 더 정직하다. 이 책에 담긴 기든스는 붉은 장미를 수놓은 옷을 입고 우향우를 하는 모습이다. 정부의 역할, 평등에 대한 인식, 복지 정책에 대한 재검토 등 책에 담긴 그의 생각은 결코 고전적 사민주의의 것이 아니다.

그 생각의 옳고 그름은 나는 모르겠다. 사회적 형편에 따라 그것은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다. 정책은 매순간 상황에 따라 선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겠다. '진보와 보수'를 '선과 악'의 동의어로 보고, 스스로를 포장하는 건 어떠한 건강한 사회적 공론도 형성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실용주의'니 '제3의 길'이니 하는 허망한 정치적 언어만을 양산할 따름이다.

사안별로 개인의 이성을 따라 의견을 제출하라. 그래서 그 무수한 의견들이 소리내 말하게 하라. 그 편이 옳다. 진보니 보수니 떠들어선 공론의 장이 열리지 않는다. 싸움판이 벌어질 뿐이다. 진보가 반드시 옳고 보수가 반드시 그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정직할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덧붙임: 김치수의 지적 하나.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보수주의가 자리잡고 있는데도 진보주의자인 척할 때는, 사소한 것에 과격해지고, 본질적인 것에는 무관심해진다." 옳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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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 토인비 저/이창신 역 | 개마고원 | 2004년 01월

폴리 토인비의 '거세된 희망'(개마고원 2004년 1월)을 여러 날에 걸쳐 읽었다. 토인비는 영국이 배출한 최고의 언론인이다. 40년을 언론사에서 일했다. 그는 가디언誌에 칼럼을 쓴다. 그를 처음 알게된 것도 가디언 칼럼을 통해서다. 그의 주 관심은 빈곤문제, 전공은 위장취업이다. 그는 기자직을 내려놓길 일 삼아 한다. 빈곤이 꿈틀대는 현장의 목소리를 길어내기 위해서다. 30년 전에도 그랬다. '노동하는 삶'이란 책을 썼다. 책에서 그는 진짜 '기자' 되기 위해 가짜 '노동자'행새를 했다.

이 책의 출발도 다르지 않다. 책은 토인비가 위장취업을 해 겪게 되는 빈곤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꼬박 30년이 지나 그는 빈곤의 한 가운데로 다시 기어들었다. 청소부, 병원 잡부, 간병인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기자 신분은 철저히 속였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다만 "현재 우리가 사는 방식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p.33)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답하고 싶어서다.

물음에 대한 토인비의 답은 단호한 '부정'이다. 그는 오늘이 30년 전보다 나을 게 없다고 말한다. "밑바닥 소득층의 실질임금이 30년 전과 다름이 없거나 오히려 더 떨어진 수준"(p.365)이라는 이유에서다. 1970년 이후 30년 동안 영국의 국민소득은 두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상류층과 하류층 사이의 소득 격차가 벌어지면서 사회적 상승이동은 멈춰버렸다."(p.17) 전체 소득이 늘어도 빈곤층은 줄지 않은 것이다. 현재 영국의 빈곤층은 전체 인구의 20%에 달한다. 신노동당이 외치는 '노동을 위한 복지'란 그저 농담이었다.

이대로라면 소득 격차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다. 늘어나는 부는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 위로만 몰린다. 문제는 역시 돈이다. 토인비도 고백한다. 그가 하층 노동자로 사는 동안 생계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럭저럭 먹고 살 순 있었다. 그러나 술도, 쇼핑도 그에겐 금지된 것이었다. 최저임금 노동자에겐 단지 살아가는 것만 허락됐다. 그 외엔 모두 '금기'였다. 그래서 그는 가난을 광범위한 '제외'라 정의한다.

빈곤문제는 개인의 것이 아니다. 아래가 곪으면 전체 사회가 붕괴한다. 그들에겐 생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견딜 수 없는 건 소비사회의 출입금지 명령이다. 평범한 즐거움으로부터 제외되는 것이다. 주린 배보다 아픈 배가 더 문제다. 빈곤문제를 다룰 때 새길 말이다: 사람들은, 배고픈 건 참아도 배아픈 건 못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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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익 지음ㅣ문학동네ㅣ2004년 1월

김병익의 <글 뒤에 숨은 글>(문학동네, 2004)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 몇 토막:  

하나. '이 책의 저자는 세대이자 시대'라는 고종석의 지적은 옳다. 책의 저자는 결코 김병익 개인이 아니다. 책장 사이사이를 촘촘히 메우고 있는 그의 세월의 두께가 이를 말해준다. 한글 1세대로, 4.19 세대로 한 시대를 통과했던 그의 이력은 그대로 한국 현대사에 값한다. 이 책에는 언론과 문단을 두루 거친 그의 이력서가 화려함보다는 질박함으로 덧칠돼 있다. 그 질박함이란 결국 개인 김병익을 포함하는 한 세대가, 한 시대가 함께 빚은 얼굴의 질감일 것이다.  

둘. 언제부턴가 김병익적 글쓰기가 못마땅하다. 김병익적 글쓰기란 쉽게 말해 늘여쓰기. 문학평론가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묻어나는 만연체다. 까닭 없이 레토릭을 갖다 붙이고 콤마를, 문장 부호를 남발하는 글쓰기를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의 전직이 기자라는 것, 게다가 '문화면 사건 기자'라는 애칭을 달고 다녔었다는 사실이 의아하다. 적어도 문체에서만큼은 기자 김병익을 찾아내기란 어렵다. 간결한 기사체의 골격도 남기지 않은 채, 그는 문학으로 달아난 듯하다. 김병익의 문장에선 문학의 냄새가 진동을 하지만, 아무리 좋은 향도 오래 맡으면 달아나고 싶은 법이다. 호흡이 긴 문장은 읽는 이를 지치게 한다. 그래서 내게 좋은 글이란 짧고 아름다운 글의 다른 이름이다. 김현과 김병익과 정과리와 김우창 들의 문장에 작별을 고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점점 신문쟁이가 돼 간다는 방증일 테다.  

셋. 그럼에도 이 책의 콘텐츠는 건져 새길 것들 뿐이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은 이것이다. '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은 그 밖의 것을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의 동의어'(p.18)라는 그의 고백. 몇 날 지나지 않았지만 편집국을 경험하면서 내게 '아는 것'이 차지하는 부분이 극히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더 배워야 할 것이고, 그래서 더 겸손해야 할 것이며, 그래서 더더욱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할 것이다. '기사는 머리가 아니라 발로 쓰는 것'이란 말은 결국 자신의 무지를 긍정하는 토대 위에서나 가능한 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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