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싶은 때가 있다. 너저분한 정치 언어에 휩싸여 하루를 탕진하는 요즈음이 그렇다. 내게 추악한 정치 언어는 가깝고, 매끈한 문학 언어는 아득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악취나는 정치 현장에서 허우적대는 나는, 고백컨대, 단 한줄의 문학도 속시원히 소화하지 못한다. 허기진 감성으로 문학을 뒤적여도 화사한 문학 언어는 내 가슴 어딘가에서 턱, 걸려버리곤 했다.

고향 길에 집어든 『개밥바라기별』은 그런 점에서 낯설었다. 내게 일단의 문학적 감성이라도 남아있었던 걸까. 그 전부를 소진해버린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술술 읽혔다. 황석영의 투박한 문장이 가슴을 울렁이게 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의 따옴표도, 느낌표도, 말줄임표도 내게 지극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의 문장이 돌연 미끈해진 탓은 아니었을 게다. 소설 곳곳에서 여전히 덜컹대는 그의 문장과 마주하곤 했기 때문이다. 내 가슴을 달음박질하게 했던 건 외려 그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유준’이란 인물 위에 포개진 그의 청소년기가 그랬고, 일체의 사회적 질서에 침을 내뱉던 그의 벗들이 그랬다. 시험 기간을 거치면 죄다 사라져버리는 지식 대신 살아서 꿈틀대는 지혜를 찾겠다며 유준이 자퇴서를 내던질 때, 그와 벗들이 무전 여행으로 전국을 훑을 때, 나는 내 안의 원망공간(願望空間)을 끄집어 내는 전율을 경험했던 것이다.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질서 속에서 안온할 테지만, 그 질서 안에 갇힐 때 온전하지 못할 테다. 견고한 질서에 맞섰던 유준과 그 벗들의 소년기가 눈부신 건 그래서다. 황석영은 ‘작가의 말’에서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너희들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다만 자기가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선 안 된다”고 나즈막히 일러둔다.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하지도,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고집스레 지키고 있지도 못한 오늘, 마음이 가난한 어느 해질녘 ‘개밥바라기 별’과 마주친다면 다만 목놓아 울어버릴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나를 둘러싼 온갖 질서에 질식할 것만 같아서다. 소설에서 유준은, 아니 젊은 시절 황석영은, 일용직 노동자로 전국을 떠돈 일이 있다. 한일협정 반대시위로 끌려간 유치장에서 만난 깡다구 넘치는 한 노동자를 따라서다. 그 노동자의 농익은 한 마디는 그의 젊은 시절을 출렁이게 했다. “사람은 씨팔 ... 누구나 오늘을 사는거야”

그 오늘을, 작정해둔 귀한 가치를 따라,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하며 보낼 순 없을까. 서른을 훌쩍 넘기고서도 개밥바라기 별처럼 불안한 빛줄기만 새어나오고 있는 내 젊음이 한심스러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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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ldo
형, 시간 언제 되나?
소주 한잔 먹고 싶다.
2008/09/15 13:01

조날도야 연락해라. 시간 잡자.
2008/09/2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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