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자전거는 홀로 꼿꼿하다. 무작정 불어오는 풍경을 밀쳐내며 자전거는 거친 땅 위를 변주한다. 그럴 땐 자전거 위에 실린 내 육체도 바짝 조여온다. 바람과 바퀴가 빚어내는 변주가 내 육체를 들썩이고, 그 불규칙한 리듬을 따라 내 마음의 줄도 요동친다.

그날도 바람이 몹시 거셌다. 무언가에 홀린 듯 오후 네시까지 잠에 빠졌던 날이었다. 한 차례의 악몽과, 두 차례의 해석 불가능한 꿈을 꾼 뒤였다. 함박 젖은 땀에 섹섹 들리는 숨소리가 유쾌하지 않아 잠을 깼던 것 같다. 자전거를 끌고 나선 건 그런 흐느적이는 몸을 감당할 길이 없어서였다.

봄빛에 물든 일산은 눈부셨다. 세찬 바람에도 봄의 아름다움은 견고해 보였다. 아니, 거대한 폭풍이 이 모든 풍경을 날려버린다 해도 가루가 된 봄빛은 아름다울 터였다.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봄빛 속을 내 흐믈대는 육체가 뚫고 지나갔다. 권태롭게 짓밟아대는 자전거 페달에 몸을 의탁한 채.

저녁 어스름이 가까워오는 시간인데도 호수는 제법 붐볐다. 한 무리의 청년들이 줄지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지나갔다. 그들의 발사위를 따라 대지는 한결 매끄러워졌다. 인라인의 행렬이 한 차례 닦아낸 길위를 자전거는 덜컹거리며 뒤따랐다.

자전거 도로 위로 두 여성이 불쑥 뛰어들었다. 끼익 하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 도로 위를 침범한 건 그들이었으나 그들을 나무랄 순 없었다. 바람 부는 날 자전거는 세상의 모든 풍경을 지워버리곤 한다. 지워진 풍경 속에서 두 여성은, 두 모녀는 서로를 꼭 껴안고 있었다. 중년의 여성이 여고생의 발그레한 뺨을 막 부비려던 찰나였다. 끼어든 건 외려 나였다. 사랑으로 충만한 모든 것들은 침범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어폰에선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울먹이듯 들리는 노래가 아찔해 자전거를 급히 세웠다. 이날 하루를 뜨겁게 달구었을 빛은 호수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다. 수면을 매만지듯 비취는 빛 아래로 호수가 들썩이고 있었다. 세찬 바람을 이기지 못한 탓일까. 호수는 더이상 출렁이지 않았다. 거대한 용암이 꿈틀대듯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울룩불룩 요동치는 수면을 껴안은 채 호수는 속수무책이었다.

봄의 호수를 거슬러 오는 길. 자전거도 나도 지친 듯 몹시 비틀댔다. 세상의 모든 소리도, 불어오는 모든 풍경도, 흩날리는 모든 봄빛도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다. 권태로운 페달질을 거듭하며 나는 두 차례의 해석 불가능한 꿈을 떠올렸다. 바람 부는 날 일산의 호수는 오래도록 달궈진 냄비 같았다. 부글부글 끓고있는 호수를 보고 있자니 또다시 졸음이 쏟아졌다.

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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