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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일곱의 아비가 예순 다섯 아들의 손을 잡는다.
기력이 쇠한 노수(老手)는 쭈그러진 또 다른 노수를 가만히 쓰다듬는다.
여든 일곱의 눈이 촉촉해진다. 예순 다섯은 습한 눈을 애써 외면한다.
“아부지, 오도바이 소리가 영 시끄럽네예, 맞지예?”
예순 다섯이 슬그머니 마당으로 나선다. 축 늘어진 여든 일곱 노구는 별 대꾸를 못한다.
대문 밖 부릉부릉 엔진 소리 요란하다.
여든 일곱 노구를 실어나르는 전기 스쿠터가 제 존재감을 과시한다.
예순 다섯이 ‘오도바이’를 손질하고 있을 때 여든 일곱의 할배가 손주를 찾는다.
서른 둘의 손주는 할배 앞에 무릎을 꿇는다.
서른 둘의 악력에 사로잡힌 할배의 팔이 앙상하다.
“느그 아부지, 요새 마이 아프다매, 내가 큰 걱정인기라...”
여든 일곱의 아비가 예순 다섯의 아들을 염려한다.
하늘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노구가 시나브로 노인이 돼가는 아들의 몸을 염려한다.
“느그 아부지, 우리 아들 좋은 약 구해줄 수 있제?”
인간이 인간을 낳는 일.
할배가 아비를, 아비가 아들을 낳는 일.
할매가 애미를, 애미가 딸을 낳는 일.
할매가 아비를, 아비가 딸을 낳는 일.
할배가 애미를, 애미가 아들을 낳는 일.
그 지독하고 아름다운 운명.
노곤한 가을 햇살에 감나무가 제 몸을 축 늘어뜨린 청도에서
여든 일곱 아비가 예순 다섯 아들의 손을 매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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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공부중인 친구 녀석이 제 블로그에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33세가 되는 아들에게 아직까지 경제적 지원을 해야만 하는 엄마 아빠에게 아들이 그 돈으로 엿 사먹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라고 써 놓았다. 녀석의 ‘아빠’는 이런 댓글을 달았다. “33살이 아니라 50살이 되어도 너는 나의 아들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돈이 덜 든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부담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아름다운 댓글 대화를 엿보다가 문득 추석 풍경이 떠올라 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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