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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FONEO's Diary</title>
		<link>http://foneo.cafe24.com/</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Wed,  5 Aug 2009 11:39:46 +0900</pubDate>
		<item>
			<title>왕처럼 화내라</title>
			<link>http://foneo.cafe24.com/entry/%EC%99%95%EC%B2%98%EB%9F%BC-%ED%99%94%EB%82%B4%EB%9D%BC</link>
			<description>&lt;strong&gt;&lt;a href=&quot;http://news.joins.com/article/aid/2009/01/09/3286423.html?cloc=olink|article|default&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왕처럼 화내라&lt;/font&gt;&lt;br /&gt;
&lt;/a&gt;&lt;/strong&gt;크리스토프 부르거 지음, 안성철 옮김&lt;br /&gt;
미래인, 328쪽, 1만2800원&lt;br /&gt;
&lt;br /&gt;
분노란 말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감각되지 않는다. 어떤 이에겐 무작정 삼켜야 할 것이며, 또 다른 이에겐 덮어놓고 터뜨려야 할 어떤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분노란 말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주목한다. 무턱대고 참아서도 대책 없이 발끈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심리 트레이너인 그에게 분노란 열정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lt;br /&gt;
&lt;br /&gt;
이 책은 들끓는 분노를 삶의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방법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다. 저자는 불끈 솟아나는 분노의 감정을 적절히 활용하라고 권한다. 분노를 효율적으로 변주하면 일이나 인간관계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lt;br /&gt;
&lt;br /&gt;
저자는 분노를 다스린다는 뜻에서 ‘분노 대왕’이란 비유적 표현을 끌어온다. 또 분노를 마구잡이로 터뜨리는 ‘폭군’, 분노를 꾹 누르고 사는 ‘물러난 왕’ 등으로 유형을 나눈다. 폭군처럼 화를 조절하지 못하면 주변과 마찰을 일으킨다. 분노를 억압하는 물러난 왕에겐 에너지가 없다. 그러나 분노 대왕처럼 분노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제어한다면 늘 주변을 장악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lt;br /&gt;
&lt;br /&gt;
분노를 성공의 이음매로 활용한 유명 인사들의 실화도 담겼다. 당겨쓰면 이런 이야기다. 1958년 뮌헨에선 독일 축구의 역사를 뒤바꿀 한 소년의 분노가 폭발한다. ‘TSV 1860 뮌헨’에서 뛸 예정이었던 소년은 이 팀의 한 선수에게 따귀를 맞았다. 분노한 소년은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팀을 옮겼다. 훗날 독일의 축구 황제로 불린 프란츠 베켄바우어 이야기다. 저자는 이 일화를 분노가 결심을 부르고 열정적인 행동으로 이어진 대표 사례로 소개한다.&lt;br /&gt;
&lt;br /&gt;
‘책 속의 책’을 끼워 넣은 것도 흥미롭다. 장과 절을 넘어갈 때마다 ‘분노 나라’ 이야기가 나온다. 이론적 설명과는 별도로 ‘분노 나라’의 왕이 분노의 긍정적 힘을 발견해가는 한 편의 옛날이야기가 전개된다. 분노에 대한 짧은 메시지인 ‘왕을 위한 계명’ 182가지도 곳곳에 나열돼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lt;br /&gt;
&lt;br /&gt;
추락하는 경제 탓에, 텅 빈 지갑 탓에, 밀려난 직장 탓에 이래저래 분노할 일 많은 시절이다. 오늘도 덜 삭은 분노가 슬금슬금 피어오르고 있다면 서둘러 이 책을 펼쳐볼 것을 권한다. 분노는 고통의 신호이자 열정의 에너지다. 이 에너지를 억압하는 대신 긍정적 힘으로 전환시킨다면 고통의 시절도 거뜬히 넘길 수 있지 않을까. 부글부글 끓는 분노는 인간이 지닌 가장 순수한 형태의 에너지인 것이다. &lt;br /&gt;
</description>
			<category>독서일기</category>
			<author> (foneo)</author>
			<pubDate>Sun, 11 Jan 2009 13:40:2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아비가 아들에게</title>
			<link>http://foneo.cafe24.com/entry/%EC%95%84%EB%B9%84%EA%B0%80-%EC%95%84%EB%93%A4%EC%97%90%EA%B2%8C</link>
			<description>여든 일곱의 아비가 예순 다섯 아들의 손을 잡는다. &lt;br /&gt;
기력이 쇠한 노수(老手)는 쭈그러진 또 다른 노수를 가만히 쓰다듬는다. &lt;br /&gt;
여든 일곱의 눈이 촉촉해진다. 예순 다섯은 습한 눈을 애써 외면한다. &lt;br /&gt;
“아부지, 오도바이 소리가 영 시끄럽네예, 맞지예?” &lt;br /&gt;
예순 다섯이 슬그머니 마당으로 나선다. 축 늘어진 여든 일곱 노구는 별 대꾸를 못한다.&lt;br /&gt;
대문 밖 부릉부릉 엔진 소리 요란하다. &lt;br /&gt;
여든 일곱 노구를 실어나르는 전기 스쿠터가 제 존재감을 과시한다.&lt;br /&gt;
예순 다섯이 ‘오도바이’를 손질하고 있을 때 여든 일곱의 할배가 손주를 찾는다.&lt;br /&gt;
서른 둘의 손주는 할배 앞에 무릎을 꿇는다. &lt;br /&gt;
서른 둘의 악력에 사로잡힌 할배의 팔이 앙상하다.&lt;br /&gt;
“느그 아부지, 요새 마이 아프다매, 내가 큰 걱정인기라...”&lt;br /&gt;
여든 일곱의 아비가 예순 다섯의 아들을 염려한다. &lt;br /&gt;
하늘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노구가 시나브로 노인이 돼가는 아들의 몸을 염려한다.&lt;br /&gt;
“느그 아부지, 우리 아들 좋은 약 구해줄 수 있제?”&lt;br /&gt;
인간이 인간을 낳는 일.&lt;br /&gt;
할배가 아비를, 아비가 아들을 낳는 일. &lt;br /&gt;
할매가 애미를, 애미가 딸을 낳는 일.&lt;br /&gt;
할매가 아비를, 아비가 딸을 낳는 일.&lt;br /&gt;
할배가 애미를, 애미가 아들을 낳는 일.&lt;br /&gt;
그 지독하고 아름다운 운명.&lt;br /&gt;
노곤한 가을 햇살에 감나무가 제 몸을 축 늘어뜨린 청도에서 &lt;br /&gt;
여든 일곱 아비가 예순 다섯 아들의 손을 매만지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프랑스에서 공부중인 친구 녀석이 제 블로그에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33세가 되는 아들에게 아직까지 경제적 지원을 해야만 하는 엄마 아빠에게 아들이 그 돈으로 엿 사먹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라고 써 놓았다. 녀석의 ‘아빠’는 이런 댓글을 달았다. “33살이 아니라 50살이 되어도 너는 나의 아들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돈이 덜 든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부담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아름다운 댓글 대화를 엿보다가 문득 추석 풍경이 떠올라 글로 옮겼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description>
			<category>강현세설</category>
			<author> (foneo)</author>
			<pubDate>Fri, 26 Sep 2008 11:27:51 +0900</pubDate>
		</item>
		<item>
			<title>개밥바라기 별</title>
			<link>http://foneo.cafe24.com/entry/%EA%B0%9C%EB%B0%A5%EB%B0%94%EB%9D%BC%EA%B8%B0-%EB%B3%84</link>
			<description>&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foneo.cafe24.com/attach/1/1277930046.jpg&quot; width=&quot;105&quot; height=&quot;146&quot; alt=&quot;&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quot;open_img('http://foneo.cafe24.com/attach/1/1277930046.jpg')&quot;/&gt;&lt;/div&gt;문득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싶은 때가 있다. 너저분한 정치 언어에 휩싸여 하루를 탕진하는 요즈음이 그렇다. 내게 추악한 정치 언어는 가깝고, 매끈한 문학 언어는 아득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악취나는 정치 현장에서 허우적대는 나는, 고백컨대, 단 한줄의 문학도 속시원히 소화하지 못한다. 허기진 감성으로 문학을 뒤적여도 화사한 문학 언어는 내 가슴 어딘가에서 턱, 걸려버리곤 했다.&lt;br /&gt;
&lt;br /&gt;
고향 길에 집어든 『개밥바라기별』은 그런 점에서 낯설었다. 내게 일단의 문학적 감성이라도 남아있었던 걸까. 그 전부를 소진해버린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술술 읽혔다. 황석영의 투박한 문장이 가슴을 울렁이게 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의 따옴표도, 느낌표도, 말줄임표도 내게 지극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lt;br /&gt;
&lt;br /&gt;
물론 그의 문장이 돌연 미끈해진 탓은 아니었을 게다. 소설 곳곳에서 여전히 덜컹대는 그의 문장과 마주하곤 했기 때문이다. 내 가슴을 달음박질하게 했던 건 외려 그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유준’이란 인물 위에 포개진 그의 청소년기가 그랬고, 일체의 사회적 질서에 침을 내뱉던 그의 벗들이 그랬다. 시험 기간을 거치면 죄다 사라져버리는 지식 대신 살아서 꿈틀대는 지혜를 찾겠다며 유준이 자퇴서를 내던질 때, 그와 벗들이 무전 여행으로 전국을 훑을 때, 나는 내 안의 원망공간(願望空間)을 끄집어 내는 전율을 경험했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질서 속에서 안온할 테지만, 그 질서 안에 갇힐 때 온전하지 못할 테다. 견고한 질서에 맞섰던 유준과 그 벗들의 소년기가 눈부신 건 그래서다. 황석영은 ‘작가의 말’에서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너희들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다만 자기가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선 안 된다”고 나즈막히 일러둔다.&lt;br /&gt;
&lt;br /&gt;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하지도,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고집스레 지키고 있지도 못한 오늘, 마음이 가난한 어느 해질녘 ‘개밥바라기 별’과 마주친다면 다만 목놓아 울어버릴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나를 둘러싼 온갖 질서에 질식할 것만 같아서다. 소설에서 유준은, 아니 젊은 시절 황석영은, 일용직 노동자로 전국을 떠돈 일이 있다. 한일협정 반대시위로 끌려간 유치장에서 만난 깡다구 넘치는 한 노동자를 따라서다. 그 노동자의 농익은 한 마디는 그의 젊은 시절을 출렁이게 했다. “사람은 씨팔 ... 누구나 오늘을 사는거야” &lt;br /&gt;
&lt;br /&gt;
그 오늘을, 작정해둔 귀한 가치를 따라,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하며 보낼 순 없을까. 서른을 훌쩍 넘기고서도 개밥바라기 별처럼 불안한 빛줄기만 새어나오고 있는 내 젊음이 한심스러워 하는 말이다.</description>
			<category>독서일기</category>
			<author> (foneo)</author>
			<pubDate>Mon,  1 Sep 2008 23:38:4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소설가 이청준</title>
			<link>http://foneo.cafe24.com/entry/%EC%86%8C%EC%84%A4%EA%B0%80-%EC%9D%B4%EC%B2%AD%EC%A4%80</link>
			<description>&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foneo.cafe24.com/attach/1/1208533037.jpg&quot; width=&quot;280&quot; height=&quot;422&quot; alt=&quot;&quot;/&gt;&lt;/div&gt;이청준이 끝내 흙으로 돌아갔다. 문인의 부음을 듣고 눈물이 고인 건 처음이다. 세상을 문학적으로 바라보던 시절 그는 내 정신 세계를 틀어쥐고 있었다. 이청준의 소설엔 ‘전짓불’이 자주 나왔다. 그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종종 답을 강요 받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상대는 전짓불을 쏘며 어느 편이냐고 묻는다. 그는 전짓불을 파시즘의 메타포로 자주 썼다. 선생이 돌아가신 곳엔 그런 전짓불은 없다. 아무것도 강요받지 않는 저편 세상에서 맑은 글만 오래오래 쓰시기를.</description>
			<author> (foneo)</author>
			<pubDate>Thu, 31 Jul 2008 14:39:45 +0900</pubDate>
		</item>
		<item>
			<title>국회의원 곽정숙</title>
			<link>http://foneo.cafe24.com/entry/%EA%B5%AD%ED%9A%8C%EC%9D%98%EC%9B%90-%EA%B3%BD%EC%A0%95%EC%88%99</link>
			<description>&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foneo.cafe24.com/attach/1/1197013430.jpg&quot; width=&quot;187&quot; height=&quot;130&quot; alt=&quot;&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quot;open_img('http://foneo.cafe24.com/attach/1/1197013430.jpg')&quot;/&gt;&lt;/div&gt;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lt;br /&gt;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언어의 종말 처리장이다. 멀쩡한 사람도 배지를 달면 입이 험해진다. 정치 언어엔 권력 투쟁의 잔혹성이 그대로 덧칠돼 있다. 쏟아지는 정치 언어 앞에 국무총리도 장관도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혹여 각료들이 의원들에게 대드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동료 의원들이 죄다 튀어 올라와 “말버릇이 그게 뭐냐”며 호통친다. &lt;br /&gt;
&lt;br /&gt;
대정부 질문이란 그런 정치 언어의 저급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벤트다. 요 며칠 각료들은 긴급현안질의를 받느라 여의도 바닥을 오갔다. 의원들은 각료들을 거칠게 다뤘다. 나라 꼴이 이게 뭐냐고 꾸짖었다. 총리가 ‘의원님 말씀’에 토를 달다가 혼쭐이 났다. 국회의원의 목은 늘 빳빳하다. 악취나는 언어를 목구멍으로 뱉어내려면 도리 없다, 빳빳할 수밖에.&lt;br /&gt;
&lt;br /&gt;
그들 틈에도 보석처럼 반짝이는 이들이 더러 있긴 하다. 주로 사회적 약자를 대신해 국회에 입주한 경우다.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이 그렇다. 그는 척추장애란 참혹한 운명을 타고났다. 긴급현안질의가 있던 날, 곽 의원은 종일 턱걸이하듯 책상에 매달려 있었다. 1미터 20센티미터를 겨우 넘는 키 때문이다. 건장한 남성 의원들이 신나게 각료들을 족칠 때, 척추장애로 쪼그라든 여성 의원은 한없이 높은 책상과 싸워야 했다.&lt;br /&gt;
&lt;br /&gt;
턱걸이 하듯 책상에 매달려서도 곽 의원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현안질의가 끝나자 의원들은 빳빳한 목을 풀고 사사로운 잡담을 시작했다. 와중에 곽 의원은 조용히 신상발언을 신청했다. 그가 작은 키로 몽당몽당 발언대로 걸어나올 때 의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lt;br /&gt;
&amp;nbsp; &lt;br /&gt;
“장애인이 국회에 들어오니까 많이 불편합니다. 저는 키가 작고 특별히 앉아 있을 때 불편함이 많아 제 몸에 맞는 좌석 개조가 필요합니다.” 이 말을 할 때 곽 의원은 얼굴을 무너뜨리며 웃었다. “저는 장애인 대표입니다. (불편한 책상을 쓰며) 제 앞가림도 못한다면 500만 장애인들이 저를 어떻게 신뢰하겠습니까.” 이 말을 내뱉을 때 곽 의원의 얼굴에선 비장함이 피어올랐다. &lt;br /&gt;
&lt;br /&gt;
국회의장은 곽 의원에게 “곧 시정하겠다”는 의례적인 답변을 건넸다. 그러곤 나무 망치를 세번 두드려 폐회를 선언했다. 정치 언어를 배설한 의원들은 기름진 얼굴로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곽 의원은 제 키만한 책상을 거슬러 몽당몽당 그들을 뒤따랐다. 그날 누구도 곽 의원의 책상에 대해 말하진 않았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선 정당한 언어가 늘 종말 처리된다.</description>
			<category>강현세설</category>
			<author> (foneo)</author>
			<pubDate>Sun, 27 Jul 2008 00:31:3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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